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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227 / 대한문 앞 3·1만세운동시위지
* 명칭 대한문 앞 3·1만세운동시위지 이명칭
개요 대한문 앞 3·1만세운동시위지는 덕수궁(德壽宮) 대한문(大漢門) 앞의 광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뒤 독립연설회를 개최했던 곳이다. 당시의 대한문 앞의 시위지는 대한문 앞에서 현 서울광장 일부를 포함하는 거리를 말한다.
설명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일 고종(高宗, 1852~1919)의 장례식 날에 전국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만세를 부른 사건을 말한다. 1918년 파리 강화 회의에서 미국 대통령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와 1919년 일본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서 발표의 영향으로 3·1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고, 탑골공원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 30분,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식을 마친 학생과 시민 수천 명은 종로거리로 나와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여러 대열로 나뉘어 시가행진을 시작하였다. 이어 오후 3시경 덕수궁(德壽宮) 대한문(大漢門) 앞에 다다른 시위대는 광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뒤 독립연설회를 개최하였다. 시위대의 일부는 고종(高宗)의 빈전(殯殿) 근처까지 들어가 조문을 하였다. 이후 시위대는 몇 대로 나뉘어 일부는 미국총영사관에 이르러 만세를 불렀고, 다른 대열 약 2,000명은 조선총독부를 향해 시가행진을 벌였으나 본정통(현 충무로) 입구에서 일제 관헌과 대치하였다. 일본 육군성 문서인 《독립운동에 관한 건(제2보)》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경성부시가강계도(1914)》를 통해 당시 덕수궁 대한문의 위치와 대한문 앞 광장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대한문 앞 3·1만세운동시위지는 대한문 앞에서 현 서울광장 일부를 포함하는 거리인데, 현재는 도로 확장으로 당시의 모습이 많이 바뀌었다.
역사정보 1918 미국 대통령 윌슨 민족자결주의 주창 1919 일본 유학생 도쿄에서 2·8독립선언서 발표 1919.03.01 민족대표 33인 독립선언서 낭독, 학생과 시민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만세운동과 함께 독립연설회 개최
시대분류 일제강점기/1919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독립유적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2가 365-1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2가
시작일(발생일) 1919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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