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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226 / 배재학당 기숙사 터
* 명칭 배재학당 기숙사 터 이명칭
개요 배재학당(培材學堂) 기숙사(寄宿舍) 터는 1885년 설립된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의 기숙사가 위치했던 곳으로 현재는 배재정동빌딩이 들어서 있다. 기숙사 건물은 없어졌지만 아름드리 회화나무는 당시와 마찬가지로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배재학당 기숙사는 40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100평 규모의 한옥이었다. 1919년 학생 대표들이 독립만세운동을 결정하기 위해 모였던 장소로 독립운동 사적지로서 의의를 지닌다.
설명 배재학당(培材學堂)은 1885년 선교사 아펜젤러(Appenzeller, H.G.)에 의해 설립된 근대식 중등 교육기관이다. 기숙사는 40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100평 규모의 한옥으로 1888년 지어졌다. 《배재 100년사》에 따르면 당시 배재고등보통학교(培材高等普通學校, 배재학당의 후신) 기숙사는 ‘지금의 정문 수위실 뒤 남관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또한 《배재 100년사》에 수록된 당시 기숙사 사진 배경의 아름드리 회화나무를 근거로 위치를 찾아보면 회화나무 옆 배재정동빌딩 입구 A동 표지판 주변이 배재학당의 기숙사 자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기숙사 건물은 이미 없어지고 그 자리에 배재정동빌딩이 들어서 있으나 보호수로 지정된 아름드리 회화나무는 당시와 마찬가지로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배재학당 기숙사는 독립운동 사적지로서도 의의를 지닌다. 1919년 3월 4일 오전 한위건을 비롯한 시내 전문학교 학생대표와 장채극·전옥결·강우열 등 중등학교 학생 대표들이 모여 3월 5일 오전 9시를 기해 남대문 역전 광장에서 학생단 주도의 제2차 독립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또한 김원벽과 강기덕을 선정하여 지휘를 맡게 하고, 각자 편의에 따라 학교 생도와 지기들을 규합해 참가하기로 방침을 정하였다. 이때 이들이 모였던 장소가 바로 배재고등보통학교 기숙사였다. 《김형기 등 210명 예심종결결정》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역사정보 1885 선교사 아펜젤러가 배재학당 설립 1887 배재학당 새 교사 신축 1888 남관 자리에 40명가량을 수용할 수 있는 100평 규모의 기숙사 신설 1919 학생대표들이 배재학당 기숙사에 모여 독립만세운동 전개를 결정
시대분류 대한제국/1888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11길 19(정동 34-5)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시작일(발생일) 1888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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