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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223 / 조선교육협회 회관 터
* 명칭 조선교육협회 회관 터 이명칭
개요 조선교육협회(朝鮮敎育協會) 회관(會館) 터는 1920년 출범한 교육운동단체인 조선교육협회의 회관이 위치했던 곳으로 당시의 수표정(水標町) 42번지에 해당한다. 대지 349평의 교육협회 회관은 고문으로 있던 한규설(韓圭卨, 1848~1930)이 기부한 것이었으나 현재는 멸실되고 그 자리에 상업건물이 들어서 있다.
설명 조선교육협회(朝鮮敎育協會)는 과학적 지식의 보급과 ‘신교육주의’를 표방하면서 출범한 교육운동단체로, ‘조선교육회’라고도 한다. 1920년 6월 윤치소(尹致昭, 1875~1944)의 집에서 이상재(李商在, 1850~1927)를 임시 석장으로 뽑아 협회가 구성되었다. 같은 해 4월에 설립한 조선여자교육회와 함께 당시의 대표적인 교육운동단체였다. 1922년 2월 일제의 ‘조선교육령’ 개정으로 대학설립의 길이 트이자, 그 해 11월 수표정(水標町)의 조선교육협회 회관을 거점으로 조선교육회가 중심이 되어 조선민립대학기성회(朝鮮民立大學期成會)가 조직되었다. 민립대학 설립을 위해 지방의 면(面)단위까지 책임자가 임명되었고 해외동포까지 참여한 매우 치밀한 조직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전개된 고등보통학교 기성모금운동에 참여한 발기인이 많아 모금활동이 부진한 데다 이것을 민족운동으로 파악한 일제의 조직적 방해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1923년 5월 ‘경성제국대학령’이 발표되고 이어서 192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1926년 학부가 설치되자 민족교육운동은 크게 좌절되었다. 그 뒤 1927년 신간회(新幹會)의 결성으로 조선교육회는 발전적인 해체를 하였지만, 그 영향으로 각종 사설교육기관이 급증하였고, 비록 식민지 교육기관이긴 하지만 최고학부인 경성제국대학이 설립되는 자극제가 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조선교육협회 회관에 대해서는 〈동아일보〉 1922년 5월 11일자 기사에 5월 9일 시내 수표정 42번지 조선교육협회 회관에서 회원 90여 명이 출석한 가운데 회장 이상재의 사회로 제2회 정기총회를 개최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수표정 42번지의 대지 349평에 수십 칸의 가옥으로 이뤄졌던 교육협회 회관은 협회 고문으로 있던 한규설이 기부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의 건물은 멸실되었으며 현재 상업건물이 들어서 있다.
역사정보 1920 조선교육협회 설립, 수표정 42번지에 회관 마련 1922 조선교육협회 회관 거점으로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조직 1924 경성제국대학 예과 설치로 민립대학설립운동 좌절 1927 신간회 결성으로 조선교육협회 해체
시대분류 일제강점기/1920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118-2(수표동 11-1)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동
시작일(발생일) 1920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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