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상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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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정보 | JGH_001219 / 최익환 숙소 터 | ||
* 명칭 | 최익환 숙소 터 | 이명칭 | 대동단선언문인쇄지(大同團宣言文印刷地) |
개요 | 최익환(崔益煥, 1889~1959) 숙소(宿所) 터는 일제강점기에 활약했던 독립운동가인 최익환의 숙소가 있던 곳이다. 최익환은 1919년 3월 전협(全協)과 함께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 결성한 후 대동단 활동의 일환으로 숙소에 인쇄시설을 설치하고 선전문(宣傳文) 등을 인쇄·배포하는 작업을 하였는데 결국 일제에 의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숙소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 빌딩이 들어서 있다. | ||
설명 | 최익환(崔益煥, 1889~1959)은 일제강점기에 활약했던 독립운동가로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1909년 서천군 재무주사로 재직 중에 일진회(一進會, 친일단체) 회원으로 활동했던 과오를 반성하고 돈을 탈취하여 망명하려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말 최익환은 전협(全協)과 함께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 결성하기로 뜻을 모으고 그 해 4월 김가진(金嘉鎭)을 총재에 추대하였다. 이 단체는 독립의식의 고양을 목적으로 선전활동을 하였으며 삼일운동과 같은 제2회 독립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최익환은 권태석(權泰錫)의 도움으로 자금을 지원 받아 경성부 주교정에 있는 자신의 셋집에 인쇄시설을 설치하고 ‘선언서’ 약 50매와 ‘기관방략(機關方略)’ 약 40통, ‘진정서’ 약 20통, ‘포고’ 약 50통을 인쇄하였다. ‘선언서’는 대동단의 취지와 목적을 게재하고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에 기초해 끝까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분투할 것을 선언한 문건이었다. ‘기관방략’은 대동단 기관의 구성 및 활동방법을 규정한 문건이었고, ‘진정서’는 미국 및 파리강화회의에 일제 한국병합의 불법성을 통박하고 조선독립의 공인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최익환은 그 해 5월 양제은의 집에서 권태석과 함께 조선인 학생의 독립운동 궐기를 촉구하는 ‘등교 학생 제군’ 약 60통과 ‘선언’ 약 2,000 매 등을 인쇄해 일반에 배포할 계획을 실행하던 중 5월 23일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당했다. 최익환의 숙소에 대해서는 《(대동단사건)예심종결결정》과 《공판시말서(1)》《최익환 신문조서(제2회)》 등에 관련 사실과 주소지가 기록되어 있다. 당시 주소는 경성부 주교정 125번지였다. 현재 가옥은 멸실되었고 그 자리에 빌딩이 들어서 있다. | ||
역사정보 | 1889 최익환 충청남도 홍성 출생 1909 서천군 재무주사로 재직 1919 전협과 함께 조선민족대동단 결성, 숙소에 인쇄기를 설치하고 선언문 등을 인쇄 배포, 인쇄 배포 계획을 세우던 중 일제 경찰에 체포 | ||
시대분류 | 일제강점기/1919 | ||
주제분류 | 문화/인물/기타 | ||
지번주소 | |||
도로명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청계천로 184(주교동 125-2) 일대 | ||
지역 | 서울특별시 중구 주교동 | ||
시작일(발생일) | 1919년 | ||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