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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218 / 조병옥 집터
* 명칭 조병옥 집터 이명칭
개요 조병옥(趙炳玉, 1894~1960) 집터는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 겸 정치가인 조병옥의 가옥이 있던 곳이다. 지금의 중구 만리재로37길 30에 해당한다. 조병옥은 한인회·흥사단 등의 단체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했으며 광복 이후 한민당 결성에 참여하는 등 정치활동을 했다. 조병옥의 집터는 현재 경기여상 본관 부지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다.
설명 조병옥(趙炳玉, 1894~1960) 집터는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 겸 정치가인 조병옥의 가옥이 있던 곳이다. 지금의 중구 만리재로37길 30에 해당한다. 조병옥은 충청남도 천안 출신으로 공주 영명학교와 평양 숭실중학, 배재학당 대학부에서 수학하고, 1914년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니아 주 소재 와이오밍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18년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하여 동대학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미국 유학시절 흥사단과 북미대한인유학생회의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으며, 뉴욕한인회 등에 관여하며 외교활동에 힘썼다. 1925년 귀국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안창호계 흥사단(興士團)의 국내조직인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에 가입해 활동하였다. 1927년 민족협동전선으로 신간회(新幹會)가 창립될 때 본부간사로 참가하였고, 1929년 복대표대회에서 중앙집행위원 후보와 교육부장에 선임되어 광주학생사건 진상발표 민중대회를 추진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1932년 조선일보 전무 겸 영업국장에 취임했으며, 19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다시 체포되어 2년간의 예심 끝에 고등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풀려났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하고 미군정 경무부장으로 재직하였으며,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내무부장관·민주당 대표최고위원·민의원 의원 등을 역임하고, 1960년 제4대 대통령선거에 입후보 중 사망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조병옥 집터는 그가 생전 거주했던 집이 있던 곳으로 《독립운동사자료집》14권에 경성부 중림동 331-13이라는 당시의 주소가 기록되어 있다. 현재 가옥은 멸실되었고 경기여상 본관 부지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다.
역사정보 1894 충청남도 천안 출생 1914 미국으로 건너가 흥사단과 한인회 활동을 함 1925 귀국 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 수양동우회 활동 1927 신간회 창립 때 본부간사로 참가 1929 ‘광주학생사건 진상발표 민중대회’로 체포되어 징역 3년 선고 1937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다시 체포 1945 한국민주당 결성에 참여, 미군정 경무부장으로 재직 1948 정부수립 이후 내무부장관,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역임 1960 제4대 대통령선거에 입후보 중 사망 1962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시대분류 일제강점기/1920년대 이후
주제분류 문화/인물/생가(터)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만리재로37길 30(중림동 331-13)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만리동1가
시작일(발생일) 1920년대 이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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