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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0131 / 명동성당
* 명칭 명동성당 이명칭
개요 1898년에 완공된 명동성당(明洞聖堂)은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주교좌 성당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본당이자 대한민국 천주교의 상징적 건물이다. 원래 명칭은 종현성당(鐘峴聖堂)이었으나 광복 후 명동대성당(明洞大聖堂)으로 바뀌었다. 라틴 십자형 삼랑식(三廊式)으로 이루어진 고딕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어 있다.
설명 명동성당(明洞聖堂)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고딕양식의 대표적인 교회당 건물이다. 명동성당이 소재한 종현(鍾峴) 일대의 땅은 당시 이조판서를 지낸 윤정현(尹定鉉, 1793~1874)의 저택이 있던 곳이다. 원래는 조선인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金範禹, 1751~1787)의 집이 있던 곳을 조선교구장 블랑(Marie Jean Gustave Blanc) 주교가 김기밀로라는 한국인 명의로 사들이고 종현성당을 설립하였다. 이후 조선정부와 토지분쟁이 있었으나 1890년(고종 27)에 마무리되면서 본격적으로 성당건립이 추진되었다. 1892년(고종 29) 8월 5일 블랑 주교의 뒤를 이은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Gustav Charles Marie Mütel) 주교가 정초식을 거행하였으며, 성당의 설계와 공사 감독은 코스트(Eugene Joan George Coste) 신부가 맡아 진행하였다. 그러나 1896년 2월 코스트 신부가 사망함에 따라 프와넬(Victor Louis Poisnel) 신부가 업무를 이어받아 1898년 완공하였다. 명동성당의 전체적 형태는 라틴 십자형 삼랑식(三廊式)이다. 성당 내부 왼쪽에 1952년 설치한 79위(位)의 복자(福者) 제대(祭臺)와 상본(像本) 및 김대건(金大建, 1821~1846) 신부상이 있으며, 오른쪽에는 세례를 위한 세두대(洗頭臺) 대리석과 성 베네딕토상이 있다. 뒷면 성가대석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었다. 1945년 광복을 기점으로 명칭이 종현성당(鐘峴聖堂)에서 명동대성당(明洞大聖堂)으로 바뀌었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유신시대인 1975년 2월 정의구현사제단의 ‘인권회복 및 국민투표 거부운동’과 이듬해 3월 ‘민주구국선언’은 당시로써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1987년 6월 ‘박종철(朴鍾哲) 고문치사은폐조작사건규탄 범국민대회’로 시작된 명동성당 사태는 학생·시민 등 600여 명의 6일 단식농성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김수환(金壽煥, 1922~2009) 추기경이 이들의 신병처리를 놓고 당국과 중재에 나서기도 하였다. 민주화운동의 절정인 1987년에는 총 127차례, 연인원 6만 1,000명이 명동성당에서 집회를 가졌다. 이처럼 명동성당은 천주교뿐만 아니라 민주화운동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지닌 곳이다. 명동성당은 1977년 11월 22일에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었다.
역사정보 1898 완공 1900 병인박해 순교자들을 지하묘소로 안치 1945 명칭이 종현성당에서 명동대성당으로 변경 1952 79위의 복자 시복식이 열림 1975 인원회복 및 국민투표 거부운동 1976 민주구국선언 1987 박종철(朴鍾哲) 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 규탄 범국민대회 개최
시대분류 대한제국/1898
주제분류 문화/축조물/성당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 74(명동2가 1-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2가
시작일(발생일) 1898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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