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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194 / 덕수궁 돈덕전 터
* 명칭 덕수궁 돈덕전 터 이명칭
개요 덕수궁 돈덕전(德壽宮 惇德殿) 터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의 덕수궁 안에 있던 2층 구조의 서양식 건물인 돈덕전이 있던 자리이다. 돈덕전은 1901년경 세워져 철거될 때까지 황제의 알현소(謁見所) 또는 연회장(宴會場)으로 사용되었다. 구한말 대한제국의 상황과 근대화를 잘 설명해주는 중요한 건물 중의 하나이다.
설명 덕수궁 돈덕전(德壽宮 惇德殿) 터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의 덕수궁 안에 있던 2층 구조의 서양식 건물인 돈덕전의 자리이다. 덕수궁은 사적 제124호로, 원래 명칭은 경운궁(慶運宮)이었지만 1907년 고종(高宗)이 순종(純宗)에게 양위한 뒤 이곳에 살면서 명칭을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덕수궁 내에는 구성헌(九成軒)·중명전(重明殿)·정관헌(靜觀軒)·석조전(石造殿) 등 서양식 건축물이 있었는데, 돈덕전도 그 중 하나이다. 돈덕전은 그 규모가 덕수궁 내 가장 큰 건물인 석조전에 버금가는 정도였으며, 1910년 완공된 석조전보다 이른 1901년경에 세워져 각국 사절과의 외교의례는 물론 1907년 순종의 즉위식이 벌어진 근대사의 핵심적인 현장이다. 돈덕전의 명칭은 《서경(書經)》 순전편(舜典篇)에 나오는 “덕 있는 이를 도탑게 하며 어진 이를 믿는다(惇德允元)”는 글귀에서 따온 말이다. 돈덕전의 내력은 정확하게 파악되고 있지 않다. 다만 오다 세이고[小田省吾]가 1938년 저술한 《덕수궁사(德壽宮史)》 등을 통해 돈덕전은 1901년경에 건립되었다고 추정된다. 또한 2층 구조의 순 서양식 건물이었으며, 그 규모와 면적은 길이 127척 가량에 폭 95척 가량으로 건면적 약 350평, 연면적 약 700평이었다고 추정된다. 설계는 손탁호텔, 러시아공사관, 덕수궁 궁전건물 등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기사 사바틴(A.I. Sabatine)이 맡았다. 돈덕전은 원래 총세무사(總稅務司)인 영국인 브라운(Sir. John McLeavy Brown)이 관장하던 해관구역(Custom Compound) 안에 해관청사(海關廳舍)의 용도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그러던 것이 경운궁 영역이 확장되면서 그 궁궐 안으로 편입되기에 이르렀다. 구체적인 위치는 현재의 덕수궁 권역의 북서쪽 모서리, 석조전 뒤쪽이다. 당시 사진 등을 통해 외관을 보면, 벽돌조 2층 건물로 지붕은 경사가 급한 모임지붕으로 처리되었고, 측면과 후면에 뾰족한 원추형의 첨탑을 올린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1층과 2층 모두 벽돌 기둥 사이에 아치를 올려 아케이드를 형성하였다. 벽돌 기둥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배꽃 문양의 장식을 형성하여 시각적으로 두드러지게 하였다. 돈덕전은 주로 황제의 알현소(謁見所) 또는 연회장(宴會場)으로 사용되었다. 1907년 순종의 즉위식, 1912년 고종의 신년하례식 등이 돈덕전에서 행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때 아관파천(俄館播遷) 당시의 사진으로 알려졌던 사진 속 건물이 바로 돈덕전이다. 돈덕전은 1919년 고종의 사후에는 거의 방치되다가 1921년 이후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대한제국기 법규모음집인 《법규유편(法規類篇, 1908)》에서 돈덕전의 평면도가 발견되어, 덕수궁 복원계획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돈덕전은 구한말 대한제국의 상황과 근대화를 잘 설명해주는 중요한 건물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한정된 사료로 인해 그 복원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 복원 및 보존이 필요한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정보 1901 돈덕전 건립 1907 순종 돈덕전에서 즉위 1919 고종 사후 방치 1921년 이후 철거 2011 《법규유편》에서 돈덕전 평면도 발견
시대분류 대한제국/1901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궁궐터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정동 5-1)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시작일(발생일) 19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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