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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170 / 한국한성화교소학교
* 명칭 한국한성화교소학교 이명칭
개요 한국한성화교소학교(韓國漢城華僑小學校)는 명동에 위치한 대만(臺灣)계 외국인 학교로,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화교학교이다. 한성화교소학교 옆에는 주한중국대사관이 있어 이곳 주변에 중국음식점을 비롯한 중국 관련 상점들이 많이 모여 있다.
설명 한국한성화교소학교(韓國漢城華僑小學校)는 명동에 위치한 대만(臺灣)계 외국인학교로, 1909년 9월 한국에서 최초로 정식인가를 받고 설립되었다. 1902년 개교한 최초의 화교학교인 인천화교소학교의 뒤를 이어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문을 연 화교학교이다. 대만식(번자체) 교육방식을 채용하고, 대만정부로부터 교과서를 무상으로 지원받고 있다.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정규 체육수업 이외에 일주일에 1시간 우슈수업을 따로 만들어 가르치기도 한다. 주한중국대사관 옆에 자리한 한성화교소학교는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는 14개의 화교학교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학교가 흥성하던 시기인 1960년에서 1970년대, 학생 수가 전교생 2,300명으로 가장 많았을 때는 세계 3위 규모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학생 수가 점차 줄었지만 한성화교소학교는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이름난 화교학교 중 하나다. 명동에 한성화교소학교와 중국대사관이 들어선 이유는 1882년 발생한 임오군란(壬午軍亂)과 관련이 있다. 구식군대와 서양식 교육을 받은 신식군대가 충돌하면서 벌어진 임오군란으로 청나라는 이를 진압한다는 명분하에 3,500명의 병사를 파견했고, 이들 중 일부가 지금의 주한중국대사관 자리에 주둔했다. 당시 병사들과 함께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의 조달상인(군속)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명동을 중심으로 포목점과 요리집 등 다양한 가게를 열어 큰돈을 벌어들였다. 1885년에는 청나라의 실권자였던 위안스카이[袁世凱, 1859~1916]가 병사들이 주둔해 있던 자리에 공관을 짓고 10년 가까이 머무르기도 했다. 위안스카이의 비호 아래, 명동에 자리 잡은 청상(淸商)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져갔고 이들을 통해 다양한 중국문화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한성화교소학교와 주한중국대사관 입구 주변에선 중국과 관련된 물건을 판매하는 가게들과 화교들이 운영하는 전통 중화요리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거리를 콴첸루[官前街]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대사관 앞거리를 의미한다. 중국에서는 ‘번화가’를 뜻하는 말로 쓰기도 한다. 이곳의 중화요리점은 대부분 화교들이 직접 운영한다. 이들은 대를 이어가며 명동을 찾는 사람들에게 중국 본토의 맛을 전달하고 있다.
역사정보 1909 한성화교소학교 개교
시대분류 대한제국/1909
주제분류 장소 및 시설/기타 부대시설/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2길 35(명동2가 83-8)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2가
시작일(발생일) 19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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