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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168 / 호위청 터
* 명칭 호위청 터 이명칭
개요 호위청(扈衛廳) 터는 남산동2가 2번지 현 남산초등학교 부근에 자리했던 호위청의 터이다. 호위청은 조선 후기 궁중의 경호를 맡아보던 군영으로 1623년(인조 1)에 설치되어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군제개편되어 완전히 폐지되었다.
설명 호위청(扈衛廳) 터는 남산동2가 2번지 현 남산초등학교 부근으로, 과거 이곳에는 조선시대 궁중을 경호했던 군영인 호위청이 있었다. 이에 남산동2가를 호위청동, 호동(扈洞) 또는 호위청골로 칭하기도 했다. 호위청은 1623년(인조 1) 궁중을 수호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호위청은 원래 인조반정(仁祖反正)에 참여한 공신(功臣)들이 개인적으로 거느리고 있던 반정 군사력을 정규 병력으로 공인하는 과정에서 설립된 것이다. 호위청은 4명의 훈신(勳臣, 드러나게 공로를 세운 신하) 또는 척신(戚臣, 임금과 성이 다르나 일가인 신하)이 호위대장이 되어 각 대장이 100명의 군관을 거느리고 궁중의 깊은 곳에서 국왕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도록 했고, 각 대장이 1청씩 맡아 모두 4청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이후 어영청(御營廳)·총융청(總戎廳) 등의 신군영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호위청 소속의 군관들이 신군영의 기간요원으로 빠져나가 위치가 약화되었다. 이에 따라 현종(顯宗) 때는 3청으로 줄었고, 숙종(肅宗) 때 4청으로 회복되었다가 다시 3청으로 환원되었다. 이때 호위청의 관원으로는 각 청마다 대장(大將, 정1품) 3명, 별장(別將, 정3품) 3명, 군관(軍官) 350명, 소임군관(所任軍官) 3명, 당상별부료군관(堂上別付料軍官) 1명이 있었다. 호위청의 대장 중 1명은 국구(國舅, 국왕의 장인)가, 2명은 훈신·척신인 대신이 겸직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런데 1777년(정조 1) 호위청 군관이 침전(寢殿)에 침입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정조(正祖)는 3청이던 호위청을 1청 350명으로 크게 축소했으며, 호위청 대신 숙위소(宿衛所)를 신설하여 자신을 호위하게 했다. 당시 호위청은 사실상 정조의 왕위계승을 반대하던 척족세력이 장악하고 있었으므로, 정조가 호위청을 축소한 것은 친위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호위청은 몇 번의 폐지와 복설(復設)이 거듭되다가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군제개편 과정에서 완전히 폐지되었다.
역사정보 1623 궁중 수호를 위해 설치 1777 호위청 군관이 침전에 침입하는 사건 발생 1894 갑오개혁 때 군제개편으로 폐지
시대분류 조선/1623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22길 17(남산동2가 2)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남산동2가
시작일(발생일) 162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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