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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165 / 육군제9보병사단 창설지
* 명칭 육군제9보병사단 창설지 이명칭
개요 육군제9보병사단(陸軍第9步兵師團)은 1950년 10월 25일 당시 중구 수하동 청계국민학교에서 창설되어, 백마고지 전투 등 6·25전쟁과 월남전 파병으로 많은 전과를 올렸다. 2010년 창설 60주년을 맞아 옛 청계국민학교 터인 수하동 페럼타워 앞에 ‘육군제9보병사단 창설지’표지석을 세워 백마부대의 전과(戰果)와 명성을 기리고 있다.
설명 육군제9보병사단(陸軍第9步兵師團)은 1950년 10월 25일 국방부 일반명령 제192호 명에 의거하여 당시 중구 수하동 청계국민학교에서 창설되었다. 초대(初代) 사단장은 장도영(張都暎, 1923~2012) 준장이었으며 예하부대로 보병 제28·제29·제30연대와 제30포병대대를 두었다. 제9보병사단은 편성 1개월도 못 된 1950년 11월 23일부터 경북지구(영주, 김천, 문경) 공비토벌작전에 참가하였다. 1951년 1월 25일 연합군의 제2차 총반격 시에는 제1군단 예하부대로서 북한군 제10사단의 주력을 섬멸했다. 이 전투에서 적 사살 5,549명, 화기 노획 1,622정 등의 큰 전과(戰果)를 올렸다. 그 후 철원지구 반격작전, 금화지구 방어작전, 사두봉전투를 연이어 수행했다. 유명한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白馬高地) 전투에서는 중공군 제38군의 12차에 걸친 인해전술(人海戰術)에도 불구하고, 처절한 공방전 끝에 적병 8,234명을 사살하는 등 백마고지를 회복하는데 성공하였다. 전투가 끝난 뒤 포격에 의해 고지의 형태가 말의 형상으로 변한 것을 본 미군들은 그곳 395고지를 ‘백마고지(White Horse Hill)’라고 불렀다. 또 육군제9보병사단은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백마부대’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 이후 1966년 6월 1일 국방부 지령 제3호에 의거하여 제2차 파월(派越) 전투사단으로 지명됨으로써 해외에 파병되었다. 백마부대는 파월기간 중 478회의 대부대 전투와 21만 1,236회의 소부대 전투를 실시하여 총 21만 1,714회의 전투를 치렀다. 또한 전투 중에도 대민농사·노력봉사·의료봉사·도로건설 및 주택건설·급수시설 등 많은 대민사업을 지원했다. 제9보병사단이 창설된 지 60주년을 맞아 2010년 수하동 페럼타워 앞(옛 청계국민학교 터)에 ‘육군제9보병사단 창설지’표지석을 세워 백마부대의 전과(戰果)와 명성을 기리고 있다.
역사정보 1950 10월 25일 육군제9보병사단 창설 1966 백마부대 월남전 파병 2010 육군제9보병사단 창설지 표지석 세움
시대분류 현대/1950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5길 19(수하동 66)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수하동
시작일(발생일) 1950년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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