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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164 / 황토현 터
* 명칭 황토현 터 이명칭
개요 황토현(黃土峴)이란 지금의 세종로와 신문로, 종로가 엇갈리는 사거리 남쪽 야트막한 고개를 ‘황토마루’라고 일컫던 데서 유래되었다. ‘경복궁 광화문 복원사업’에 따라 세종로 일대를 정비하여, 2009년 중구 태평로1가 68 광화문빌딩 부근에 ‘황토현 터’가 조성되었다.
설명 황토현(黃土峴)이란 지금의 세종로(世宗路)와 신문로(新門路), 종로(鐘路)가 엇갈리는 사거리 남쪽 야트막한 고개를 ‘황토마루’라고 일컫던 데서 유래되었다. 2005년부터 실시된 ‘경복궁 광화문 복원사업’에 따라 세종로 일대를 정비하여, 2009년 중구 태평로1가 68 광화문빌딩 부근에 ‘황토현 터’가 만들어졌다. 조선이 건국되고 도성과 궁궐, 관아(官衙)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세종로는 한성의 심장부가 되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남쪽으로 나 있는 대로의 양편으로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사헌부(司憲府)·한성부(漢城府) 등의 관아건물들이 자리하여 여기를 육조(六曹)거리라 하였다. 육조거리는 동대문과 서대문을 잇는 동서로 난 간선도로와 만나면서 끝이 나고 그 남쪽이 바로 황토마루가 된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1914년 4월 1일부터 광화문통(光化門通)이라 개칭하였다. 광복 후 1946년 10월 1일 일본식 동명(洞名)을 우리 명칭으로 개칭할 때 동명을 세종로라 고치고 도로명 역시 세종로라고 했는데, 이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세종로는 비각(碑閣, 고종 즉위 40년 칭경기념비)에서 세종문화회관을 거쳐 광화문에 이르는 가로명이자 법정동의 명칭이다. 세종로는 길이 600m에 불과하지만 폭은 100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도로이다. 세종로는 조선시대에도 오늘날과 같이 폭이 넓은 길이었으며, 1912년 일제가 경성시구개수예정계획(京城市區改修豫定計劃)을 세워 29개 노선을 고시하고 1914년에 광화문에서 황토마루까지 도로를 개수하였다. 그 후 1936년 조선총독부고시 제722호로 이 도로의 폭을 30간(약 53m)으로 지정했는데 지금의 절반 정도 폭이었다. 지금은 태평로(太平路)가 트여서 남대문까지 대로가 뻗었지만 애초에는 큰 길이 없었다. 1914년 태평로가 폭 27m로 개통되기 전 남대문까지의 길은 종로를 돌아서 가는 지금의 남대문로였다. 황토마루 남쪽으로는 지금 프레스센터 자리에 군기시(軍器寺, 고려·조선시대에 병기(兵器)의 제조 등을 관장한 관청)가 있었고, 지금의 정동 일대에는 태조(太祖)의 비(妃)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정릉(貞陵)과 그 원당(願堂)인 흥천사(興天寺)가 있었다. 그 남쪽으로는 태평관(太平館, 조선시대 명나라 사신을 대접하던 영빈관)이 자리했다. 세종로는 조선시대부터 우리나라 정치의 중심부였으며, 지금도 세종로 서쪽에는 정부종합청사, 동쪽에는 미국대사관이 위치하고 있어 육조거리의 명맥을 600여 년 동안 이어오고 있다.
역사정보 1914 일제강점기 광화문통이라 개칭 1946 일본식 동명을 우리 명칭 세종로로 개칭 2009 황토현 터 설치
시대분류 현대/2009
주제분류 문화/유적지, 사적지/사지, 전지, 유지, 원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1가 68 일대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태평로1가
시작일(발생일)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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