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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세
관리정보 JGH_001162 / 정지윤
* 명칭 정지윤 이명칭
개요 정지윤(鄭芝潤, 1808~1858)은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안(景顔), 호는 하원(夏園), 별호(別號)는 수동(壽銅)이다. 위항시인(委巷詩人)의 대표적 인물이다. 별호인 정수동(鄭壽銅)으로 더 알려져 있으며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았다. 재산을 모으지 않고 방랑했으며,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으로 유명해 ‘익살꾼 정수동’으로 많은 일화를 남겼다.
설명 정지윤(鄭芝潤, 1808~1858)은 태어날 때 손바닥에 수(壽)자의 문신이 있었다. 이름 지윤의 지(芝)가 한서(漢書)에 지생동지(芝生銅池)로 있다하여 그 동(銅)자를 따서 수동(壽銅)이란 별호를 사용하였으며 이름보다 별호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중인·서얼·서리·평민과 같은 여항인 출신인 위항시인(委巷詩人)의 대표적 인물로 김흥근(金興根), 김정희(金正喜), 조두순(趙斗淳)등 명사들과 교분이 두터웠고 그들이 재주를 아껴 후원자가 되고자 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규율적인 생활을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평생을 포의시객(布衣詩客, 벼슬을 갖지 않고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는 사람)으로 만족했으며, 두뇌가 명석해 아무리 뜻이 깊고 어려운 문장도 한 번에 그 요지를 깨달았으나 겸손했다. 그의 시풍(詩風)은 권력에 대한 저항 속에 날카로운 풍자와 야유로 일관했고, 번거로운 문장이나 허황된 형식을 배격하고 간결한 가운데 격조 높은 시를 썼다. 또한 개성을 존중하는 시를 쓸 것을 강조하였다. 정지윤의 해학과 풍자시는 그의 기이한 행적과 함께 많은 민간전승을 낳았고 ‘기발한 익살꾼 정수동’으로 유명했다. 50세에 과음으로 인해 죽게 되었는데 익살꾼답게 유언마저도 남달랐다. “죽는 기분 말인가? 처음 죽어보는 거라 잘 모르겠군. 내 죽은 다음에 다시 말해주지”이것이 그가 남긴 유언이다. 저서로 《하원시초(夏園詩鈔)》가 있다.
역사정보 1808 출생 1858 사망
시대분류 조선/1808~1858
주제분류 문화/인물/기타
지번주소
도로명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지역 서울특별시 중구
시작일(발생일)
인물 1808년~185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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